2026년 세계를 집어삼킨 경제 이슈를 꼽으라면 단연 AI이다. AI는 이제 컴퓨터 공학의 영역에서 벗어나 금융과 정치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미국 백악관은 2025년 1월 ‘AI 리더십 장벽 제거’ 행정명령으로 바이든 행정부의 안전 중심 AI 정책을 폐기하고, 규제 완화와 인프라 확대를 축으로 한 AI 행동계획을 발표했다. 엔비디아는 2026년 6월 5일 7개월 만에 한국을 다시 방문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 네이버 등 9곳 이상의 기업과 회동했다. 스타트업에서도 AI는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제 AI는 공상과학 소설에서나 등장하는 먼 미래의 기술이 아니라 어느덧 우리 목전에 놓인 혁신인 듯하다.
세계 자본주의는 21세기가 도래한 이래로 극도의 경제 침체에 빠져 있다. 만성적인 저성장 국면에 들어선 지 몇 십 년이 지났는데도 이를 반전시킬 만한 묘수는 어디에도 없는 상황이다. 미국을 위시로 한 자본주의 국가들은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AI 산업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각국의 정부는 AI의 우월한 생산력을 통해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믿고, 대중들은 자국 정부가 AI 투자에 망설이면 타국에게 기술과 시장을 뺏겨 기술적으로 종속되거나 성장의 기회를 잃을까 두려워하고 이다. 그렇다면 지금 AI 기술이 여론의 기대를 충족할 수 있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전례 없는 규모의 전 지구적 금융 투자를 과연 뒷받침할 수 있을까.
한국 또한 전 세계적인 AI 광풍에서 예외일 수 없다. 한국은 이미 국가 차원에서 AI 투자 전략을 수립하고 정부의 숙원 사업으로 강력하게 추진하려 하고 있다. 최근 한국 정부는 반도체,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를 포함하는 ‘3대 메가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총 1,35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도체에서는 수도권, 서남권, 충청, 영남권에 800조 원을 투입해 생산능력과 연구개발, 인력, 특별회계 등 생태계를 강화한다. AI 데이터센터와 피지컬 AI에는 550조 원을 투자해 초대형 데이터센터, 글로벌 AI 허브 AI 로봇 등으로 국가 전략사업을 육성한다. 8.4기가와트급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투자 유치를 포함해 550조 원을 투입하고, 2028년 상반기 착공해 2029년부터 단계적으로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미국 AI 빅테크들도 한국 기업과 연계한 AI 사업을 추진하고자 한다.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은 2026년 6월 5일 한국을 방문해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구광모 LG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 등과 만찬을 가졌다. 젠슨황은 이번 방문이 주로 공급망을 조율하기 위한 것이라 밝혔다.
한국에서는 AI 광풍에 연관된 또 다른 광풍이 불고 있다. AI의 하드웨어는 막대한 연산량을 처리할 수 있어야 하는데, 따라서 AI를 물리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연산량을 감당할 수 있는 그래픽카드와 대량의 정보를 병렬적으로 일시에 전송 가능한 고대역폭 메모리(HBM)가 대량으로 필요하게 된다. AI 빅테크들이 데이터센터를 건립하고 본격적으로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추진하자 고대역폭 메모리의 수요가 폭증했다. 이로 인해 세계 시장에서 고대역폭 메모리 공급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가 폭등했으며, 그 결과로 양사의 주가가 주도하는 코스피 지수 또한 폭등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장밋빛 환상에 근거한 기대는 허구적이며, 허구에 근거한 투자는 산업 전반을 거품으로 만들고 있다. AI 담론이 이미 컴퓨터 공학에서 금융과 투자,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가면서 이들과 결합해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적 구호로, 투자 상품으로, 금융 정책으로 AI는 기술적 실현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추진된 천문학적인 규모의 투자로, 정치적 목적을 위해 회수 가능한 수준을 아득히 초월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미국은 AI 투자를 멈추지 못하고 있고, 이 때문에 전 세계적 초인플레이션이 초래되고 있다.
미국이 AI 거품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미국의 제조업 붕괴이다. 미국은 1970년대 자국에서 이윤율이 급락한 제조업 산업 기반을 아시아 관료자본주의 국가로 이전한다. 더 저렴했기 때문이며, 금융적 이득이 더 컸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제조업 기반이 붕괴한 미국은 대중적 빈곤과 실업 문제가 만연해 있다. 2020년대 미국에서 성행한 소위 MAGA 운동은 오늘날 미국의 가장 광범위한 대중운동이자 정치 세력이다. 이는 미국의 제조업 쇠락으로 인해 초래된 세기적 실업에 대한 대중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중적 분노를 등에 업고 2025년 재집권한 트럼프는 미국 제조업을 중흥시킬 방책으로 AI 산업을 꼽고 있다. 생산 과정에 고도의 AI를 도입하면 생산성이 향상될 것이고, 만일 미국이 제조업에 AI를 적용할 기반을 마련한다면 해외로 흩어진 제조업 기업들이 AI의 높은 생산성을 누리기 위해 다시 미국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꿈이다.
또한 정부의 재정 악화와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전쟁의 여파로 미국은 고금리, 고물가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미국 건설업 경기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미 정부의 입장에서는 AI 산업을 장려하다 보니, AI 기업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데이터센터 건설을 증가시키게 되면서 부수적으로 부동산과 건설업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반 세기 동안 세계 경제가 침체되고 미국 정부의 부채가 하늘을 찌르며 더 이상 고도 성장을 이끌 주력 산업마저 부재한 상황 하에서 해외로 이전한 제조업을 다시 미국으로 불러들이고 건설 경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방도가 있다는데 미국 정부가 그것을 마다할 리가 없다. 그게 바로 AI이다. 미국에게는 AI가 아닌 다른 길이 없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2026년 미국의 세계 패권은 빠르게 붕괴하고 있다. 미국이 AI에 매달리는 것은 미국이 패권을 유지할 수단이 얼마 남지 않아서다. 미국은 그간 소위 페트로달러 체제를 유지하며 석유 결제를 오직 미국 달러를 통해서만 가능하도록 강제하였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은 석유 결제를 위해 외환보유고에 상시 달러를 채워넣어야 했으며 미국은 이를 악용해 미 국채를 전 세계에 강매했다. 그 결과 미국 달러는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하며 막대한 양의 통화를 발행해 세계 무역망을 장악할 수 있었다. 한편 미 국채의 지속적 수요는 미 국채를 저금리 상태로 유지하고 시장에 유동성을 불어넣으며, 전 세계 금융에 대한 광범위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제조업을 위시로 많은 산업을 내팽개쳤을지언정 실리콘밸리를 위시로 한 IT 및 반도체 산업만큼은 유지했다. 미국은 현재도 반도체 제조 및 전자기기 조립은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인도, 베트남 등 관료자본주의 국가들로 이전하여 하청 생산을 맡기고 이를 통제하고 있으며, 국제 반도체 공급망 전반에서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독점하며 설계에서의 표준 역시 정하는 등 기술 패권을 정립했다.
하지만 2020년대 들어서 중동 국가들은 미국과의 밀약을 깨고 독자적인 결제망을 구축하고 있으며, 중국 등 BRICS 국가들과 통화 스와프를 체결하면서 달러 외의 다양한 화폐로도 석유를 거래할 수 있게 되었다. 중국은 신재생에너지로 국가의 에너지 수요를 빠르게 충당하고 있으며 그 규모를 넓히고 있다. 결정적으로 2026년 미국-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는 석유 무역로에 대한 미국의 장악력에 상당한 의문을 남겼다. 페트로달러에 균열이 생기자 달러의 신뢰는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미국 정부의 부채가 40조 달러를 넘어서자 시장은 미 정부의 지불 능력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미국의 통화 패권에 쇠락을 초래하며 2026년 8월 미 국채의 금리가 5% 넘게 치솟았다. 반도체 패권 역시 빠른 속도로 중국에게 추격당하며 위협받고 있다. 중국은 이제 저가형 메모리 공세에 그칠 생각이 없다. 그간의 기술 축적으로 방사광 노광 장비 등을 개발해 첨단 메모리 공정을 노리고 있으며, 국가의 집중적 지원과 경험에 힘입어 AI 반도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이 거대한 서사가 물질과 숫자로 어떻게 번역되는지를 따라가 본다. 지금까지 본 것은 AI가 왜 국가 프로젝트가 되었는지에 대한 정치경제적 배경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그 프로젝트가 현실에서 어떤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AI의 물질적 기반
AI를 이야기하면서 데이터센터를 빼놓으면 표면만 보는 셈이다. 거대한 연산을 수행하려면 고성능 칩이 필요하고, 칩이 작동하려면 안정적인 전력이 필요하며, 그 전력을 감당하려면 건물과 냉각 설비, 토지, 네트워크가 모두 갖춰져야 한다. AI는 디지털 기술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매우 물질적인 기반 위에서 움직인다. 이 물질성을 떠받치는 것은 결국 자본의 배치다. 자본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어디에 먼저 가고 어디에서 나중에 회수되는지를 정하는 움직임이다. 어떤 산업이 유망해 보일수록 자본은 더 빨리 몰리고, 그 속도는 실제 수요보다 앞서가는 경우도 생긴다. AI 인프라가 그 사례다.
전력 규모부터 감각해 보자. 2025년 10월 준공된 용인 죽전 퍼시픽써니 데이터센터는 수전 용량 100메가와트(MW)로, 약 16만~20만 가구가 하루 종일 사용하는 전력에 해당한다. 정부 발표대로 삼성과 SK의 반도체 산업단지와 AI 데이터센터 메가프로젝트가 모두 지어지면, 2040년까지 27.7기가와트(GW), 원전 20기 이상에 해당하는 전력 설비가 추가로 필요하다는 계산도 나온다. 이 물질적 관문은 정책을 움직였다. 2026년 5월 국회를 통과한 AI 데이터센터 특별법은 2027년 3월 10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여러 기관에 흩어져 있던 인허가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합 창구에서 일괄 처리하고, 일정 기간 안에 처리되지 않으면 승인된 것으로 간주하는 타임아웃제를 도입했으며, 비수도권에서는 전력계통영향평가를 면제한다. 다만 논란이 됐던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의 직접 전력구매계약(PPA) 특례는 입법 과정에서 제외됐다. 전력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어디에서 조달할 것인가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았다.
해외에서는 반대 방향의 흐름도 보인다. 미국에서는 데이터센터 신규 건설을 일시적으로 금지하는 모라토리엄을 채택하는 지자체가 수십 곳으로 늘었다. 전기요금 인상, 소음, 물 사용에 대한 주민 반대가 배경이다. 인프라의 물질성은 어느 나라에서나 정치가 된다.
데이터센터는 한 번 지어 놓고 끝나는 설비가 아니다. 빠른 기술 노후화, 지속적인 업그레이드, 높은 전력 비용, 예상보다 낮은 임차 수요, 공실 위험이 동시에 따라붙는다. 여기서 과잉축적의 문제가 드러난다. 과잉축적이란 설비와 자금이 빠르게 늘어나도 실제 수요가 따라오지 못할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때 문제의 본질은 ‘투자가 너무 많다’가 아니라 ‘투자가 먼저이고 수요가 나중’이라는 시간차에 있다. 수요가 뒤따라올 것이라고 믿고 건설한 데이터센터가, 정작 완공됐을 때는 텅 비어 있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데이터센터는 그래서 성장의 상징이면서도, 과잉축적의 가능성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데이터센터라는 시설 내에서 한국이 쥐고 있는 부품이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다. AI 연산용 GPU는 연산 속도만큼이나 데이터를 얼마나 빨리 불러오는가에 좌우되는데, HBM은 메모리를 여러 층으로 수직으로 쌓아 실리콘 관통전극(TSV)으로 연결한 뒤 GPU 바로 옆에 붙여 그 데이터 병목을 푸는 부품이다. 적층 수가 늘수록 수율 관리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HBM 시장의 경쟁은 단순한 생산량 경쟁이 아니라 공정 기술 경쟁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 기준 2026년 1분기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 58퍼센트,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이 각각 21퍼센트 안팎이다. 한국 기업 둘이 세계 시장의 5분의 4 가까이를 공급하는 셈이다.
시장 전망은 밝다. 골드만삭스는 HBM 시장 규모가 2026년 557억 달러에서 2027년 1,163억 달러로 108퍼센트 성장하고, 2028년에는 1,684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 같은 달에 나온 다른 보고서들은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 UBS는 2027년에 삼성전자가 41퍼센트의 점유율로 SK하이닉스(39퍼센트)를 근소하게 앞설 것으로 내다봤고, JP모건은 2025년 60퍼센트였던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이 2028년에는 42퍼센트로 낮아지고 삼성전자가 38퍼센트까지 추격할 것으로 봤다. 엔비디아에 공급되는 HBM만 놓고 보면 변화는 더 크다. 2023년 SK하이닉스의 비중이 91퍼센트로 사실상 독점이었지만, 2026년에는 54퍼센트까지 낮아지고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이 각각 24퍼센트, 22퍼센트를 가져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중국의 CXMT가 2년 안에 10퍼센트 점유율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SK하이닉스는 40조 원대 후반의 설비투자로 주도권 수성에 나섰다.
이 수치들은 함께 읽어야 한다. 시장이 두 배로 커진다는 전망과, 그 시장을 두고 공급자들이 총력전에 들어갔다는 전망은 동시에 성립한다. 파이가 커져도 나눠 먹는 사람이 늘면 개별 기업의 몫은 줄어든다. 게다가 지금의 설비투자는 장기공급계약(LTA)이라는 수요의 '예약'에 기대어 있다. LTA는 수년에 걸쳐 물량을 공급하기로 미리 맺는 계약으로, 메모리 기업이 수십조 원의 설비투자를 결심하는 근거가 된다. 다만 LTA는 미래 수요에 대한 고객의 '약속'이지 실제 판매가 아니며, 시황이 꺾이면 물량과 가격의 재협상 여지가 생긴다. 계약이 쌓일수록 공급자의 확신은 커지지만, 그 확신의 바탕은 결국 고객의 기대다.
기대의 가격화
‘아직’이라는 말에 돈을 태우는 구조
기대는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에서 기대는 가격으로 번역되어야 비로소 힘을 갖는다. AI에 대한 기대가 커질수록 투자자는 ‘지금 사지 않으면 늦는다’는 감각을 갖게 되고, 기업은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압박을 받는다. 이 두 압박이 만나는 지점에서 투자는 가속된다. 여기에는 경쟁이 경쟁을 부르는 구조가 숨어 있다. 상대가 투자할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만 빠지면 뒤처진다’는 불안이 모든 기업을 더 큰 투자로 내몬다. 모두가 자제하면 함께 이득이지만, 상대가 먼저 움직일 가능성 때문에 결국 모두 과잉 투자로 치닫는, 죄수의 딜레마에 가까운 구도다. 여기에 ‘AI 팩토리가 모든 산업의 인프라가 될 것’이라는 기술 리더들의 서사가 결합하면서, 투자는 투자를 부르는 임계점을 넘어선다.
이 지점에서 가격은 점점 미래 서사에 의존하게 된다. 가격은 현재의 이익보다 미래의 잠재력을 크게 평가할 수 있지만,로 인해 투자한 만큼의 수익성이 날지 불투명하다. 현재 AI 버블은 세계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자금을 끌어들이고 있으나 데이터센터 설비의 지속적 소모, 데이터센터가 소모하는 막대한 전력, AI 서비스의 가격 인하 압력은 AI 사업이 장래에 창출할 부의 수준이 현재 AI 사업 투자 규모를 훤씬 밑돌 것이 점점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
AI 사업의 성적을 살펴보면 이와 같은 측면이 더욱 분명하게 보인다. 스타트업 오픈AI의 수익성은 크게 악화되어 2026년에만 적자액이 한화 60조원에 다랄 것으로 추정되었다. 손실의 주요 원인으로는 역시 시장 경쟁으로 인한 연구 개발과 연산력 투자, 가격 인하 압력이 꼽혔다. 지난 1년간 미국의 10대 AI 스타트업 기업에 막대한 투자 자금이 몰려 이들의 기업 가치가 1조 달러가량 폭등했지만 여전히 지출이 수입을 크게 웃돌고 있다. 대기업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한다. 구글의 경우 클라우드 수익이 80%가량 급등했음에도 59억 달러의 적자를 봤고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아마존 등도 현재 추세가 이어지면 2027년에는 투자 여력이 고갈될 것으로 추측된다.
AI 인프라 투자의 특성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데이터센터는 한 번 구축하면 끝나는 설비가 아니라 전력, 냉각, 업그레이드 비용이 매년 발생하는 고정비 구조다. 초기 비용은 막대한데 수익은 불확실하고, 경쟁은 치열해진다. 기업이 ‘아직 초기 단계’라고 말할 때, 그 말은 변명이 아니라 실제 구조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다만 시장은 초기 상태를 오래 참아 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기대가 강하면 사람들은 더 긴 시간을 기다릴 수 있다고 믿게 된다. 이때부터 기대는 수익성의 대체물이 된다. 진짜 수익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언젠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그 자리를 메우는 셈이다.
회계의 문제도 있다. 감가상각은 설비 비용을 사용 연수에 나눠 비용으로 처리하는 회계 방식이다. 같은 GPU라도 3년으로 잡으면 매년 비용이 커지고, 6년으로 잡으면 이익이 커진다. 2025년 말 마이클 버리가 하이퍼스케일러들이 GPU를 6년으로 상각해 이익을 부풀리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공론화된 논쟁이다. 기술 진보가 빠를수록 실제 경제적 수명은 짧아지는데, 장부상 수명이 길면 그 차이는 어딘가에 쌓인다.
자금의 회로
순환투자와 그림자금융
AI 인프라가 커질수록 전통적 은행만으로는 자금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은행이 보유한 현금의 규모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두 가지 자금 동원 방식이 전면에 등장한다.
하나는 순환투자다. 칩 공급업체가 AI 기업에 투자하고, 그 AI 기업은 투자받은 돈으로 다시 칩과 클라우드를 사고, 그 매출이 다시 공급업체의 실적과 투자 유치의 근거가 되는 구조다. 예를 들어, 엔비디아가 AI 기업들에게 자금을 투자하면 AI 기업들이 데이터센터를 지으면서 투자금으로 다시 엔비디아의 그래픽카드를 구입한다. 엔비디아는 왼쪽 호주머니의 돈을 오른쪽 주머니로 옮기는 것만으로 장부상의 실적을 올린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시스템 리스크 연구가 ‘AI 붐은 역사상 모든 기술 버블을 능가한다’는 평가와 함께 지적한 것이 바로 이 순환 구조이며, 블룸버그는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 엔비디아 사이의 거래 도표를 재구성해 기록된 AI 매출 상당 부분이 생태계 내부를 순환한다고 보도했다. CNBC의 짐 크레이머는 이런 거래가 닷컴 시절의 과잉을 연상시킨다고 지적했다. 공급자가 고객의 구매 자금을 대는 이 방식은 벤더 파이낸싱이라 불리며, 2001년 통신 버블 때 장비업체들이 고객사 자금조달을 도왔다가 함께 무너진 전례가 있다. 코닝의 주가가 100달러에서 2달러로, JDS유니페이즈가 150달러에서 2달러로 추락하는 데는 이 구조가 있었다.
다른 하나는 그림자금융이다. 사모펀드, 연기금, 자산운용사 같은 비은행 금융은 빠르고 유연하며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하다. 은행 밖에서 신용을 공급하는 이런 금융활동을 통칭해 그림자금융이라 한다. 블랙스톤 같은 사모펀드가 데이터센터에 직접 투자하거나, AI 스타트업이 은행 대신 투자자들에게서 직접 자금을 모으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평상시에는 유동성이 풍부해 보이지만, 불안이 시작되면 한순간에 말라 버리는 물과 같은 특성을 지닌다. 바로 이 때문에 시스템의 불안정성이 커질 수 있다. 국내 사례를 보자. 용인 죽전 데이터센터는 퍼시픽자산운용이 발주하고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와 신한금융투자가 공동 투자한 1조 3,000억 원 규모 사업이다. 2026년 8월에는 우정사업본부와 한국산업은행이 각각 5,000억 원씩 출자해 1조 원 규모의 AI 인프라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두 기관의 공동 펀드는 20년 만이다. 과거 부동산 개발에 투입되던 자금이 데이터센터로 이동하고 있다는 관측과 무관하지 않다. 두 경우 모두 ‘미래 수익을 담보로 대규모 자금을 빌려 시설을 짓는’ 구조가 같기 때문이다.
장부 밖의 빚도 늘고 있다. 특수목적법인(SPV)은 특정 사업만을 위해 만든 별도 법인으로, 모회사 장부에 부채를 직접 올리지 않고도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재무제표는 건전해 보인다. 그러나 위기 시 실질적인 손실 부담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2008년 금융위기의 핵심 장치이기도 했다.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한 것으로 알려진 투자자 마이클 버리는 빅테크가 SPV를 활용해 데이터센터 부채를 장부 밖으로 옮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금리 민감 산업이 주춤하는 동안에도 데이터센터 건설이 가속되는 현상을 두고, 그는 부외금융과 캡티브 보험사가 결합된 구조가 2008년 주택시장과 닮았다고 경고한다.
그림자금융이 AI 인프라에 대규모로 유입되었다는 것은 레버리지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누적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레버리지는 타인의 자본을 빌려 투자 규모를 확대하는 행위를 뜻한다. 자기자본 100억 원에 대출 300억 원을 더해 총 400억 원을 투자했다면, 4배의 레버리지를 사용한 셈이다. 수익이 발생할 때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손실이 발생할 때도 그만큼 빠르게 손실이 확대된다. 은행은 규제와 자본완충장치를 갖추고 있지만 그림자금융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위기 국면에서는 자금이 더 빨리 빠져나가고, 담보 구조가 더 급격히 흔들리며, 누가 최종적으로 손실을 떠안는지도 불분명해진다.
여기에 민스키의 금융불안정성 가설이 설명하는 구조가 겹친다.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는 금융을 세 단계로 구분했다. 이자와 원금을 수익으로 갚는 헤지 금융, 이자만 겨우 갚는 투기 금융, 이자조차 새 빚으로 갚는 폰지 금융이다. 호황이 길어지면 금융은 스스로 헤지에서 투기로, 투기에서 폰지로 미끄러진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빚으로 버틴다’는 구조가 일반화될수록, 체계는 작은 충격에도 흔들리게 된다. AI 인프라 투자의 구조, 즉 막대한 초기 비용에 수익은 불확실하고, 그 간극을 기다림과 빚으로 메우는 방식은, 민스키가 말한 투기 금융에서 폰지 금융으로의 이행과 닮은 지점이 있다. 기대가 강할 때는 이 구조가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금리가 오르거나 수익이 지연되면 그 레버리지의 무게가 한꺼번에 드러난다.
2026년 7월, 시장은 이미 한 번 흔들렸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6월 22일 고점에서 7월 말까지 28.6퍼센트 빠졌고, AI 분야의 대표적인 레버리지 펀드로 꼽히던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너스 LP는 450억 달러에서 100억 달러 수준으로 쪼그라들어 자산을 시타델에 강제로 매각했다. 그런데 같은 여름에 정반대의 데이터도 나왔다. 구글이 5월에 처리한 토큰은 월 3.2경 개로 2년 새 330배 늘었고, 독립 라우팅 서비스 오픈라우터의 처리량도 6개월 새 5배로 증가했다. 무너진 것은 수요가 아니라 금융 구조였다.
닷컴, 철도, 그리고 전염의 역사
이 분리는 역사에서 익숙한 패턴이다. 유럽중앙은행(ECB) 소속 경제학자들은 2026년 8월, 현재의 AI 투자 열풍을 닷컴 버블과 19세기 철도 붐에 비교하며 주가 조정 가능성을 경고했다. 실제로 1840년대 영국 철도 붐에서는 약 1,000개의 철도 회사가 설립됐고 주가는 1846년부터 1850년 사이 절반으로 떨어졌지만, 그렇게 놓인 철도망은 이후 100년 동안 작동했다. 2001년 통신 버블에서는 약 2조 달러가 증발하고 광케이블의 95퍼센트가 불 꺼진 채 묻혀 있었지만, 인터넷 트래픽은 붕괴 기간 내내 매년 두 배씩 늘었고, 헐값에 넘어간 광케이블은 훗날 브로드밴드와 클라우드의 기반이 됐다. 경제학자 카를로타 페레스가 정리한 순서, 즉 설치와 붕괴와 배치의 순환이다. 버블과 혁신은 공존할 수 있다. 문제는 꺼지는 방식과 그때 무엇이 남는가다.
닷컴과 지금의 차이는 자금의 경로에 있다. 닷컴 시절에는 기업공개와 주식시장이 중심이었고, 붕괴의 충격도 상당 부분 주가 조정으로 흡수됐다. 주가가 폭락하고 일부 벤처기업이 사라졌지만, 그 충격이 은행 시스템 전체를 위협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사모펀드, 벤처캐피탈, 연기금, SPV 같은 은행 밖 자금의 비중이 훨씬 크다. 이 자금은 주식시장의 일일 등락보다는 수년에 걸친 대규모 약정과 계약 구조로 움직이기 때문에, 겉으로는 조용해 보이지만 내부에는 훨씬 더 복잡한 신용 관계가 축적되어 있다. 그래서 AI의 균열은 주식시장에서 끝나지 않고, 기업 대출과 인프라 담보, 전력 투자, 수출 제조업으로 번져갈 경로를 갖고 있다. 한 곳에서 균열이 시작되면, 그 충격은 데이터센터를 건설한 시행사에서 시작해 대출을 집행한 저축은행과 증권사로, 해당 장비를 납품하는 제조업체로, 최종적으로는 그 제조업체에 자금을 대출해 준 시중은행으로까지 번져갈 수 있다.
균열의 징후는 숫자로도 관측된다. 프랑스 에파르뉴의 연구진은 2026년에 계획된 미국 데이터센터의 30~50퍼센트가 지연 또는 취소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수요가 꺾이면 남는 것은 좌초자산이다. 좌초자산이란 수요나 규제의 변화로 예상 수익을 내지 못하게 된 자산을 말한다. 원래 화석연료 설비 논의에서 나온 개념이지만, 임차 수요가 채워지지 않은 데이터센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건물은 남아 있지만 현금흐름은 없는 상태다. 철도와 광케이블이 100년, 수십 년 쓸 수 있는 자산이었던 것과 달리, 이번 순환의 핵심 자본재인 GPU는 빠르게 감가하는 소모품에 가깝다. 붕괴 뒤에 남는 것은 칩이 아니라 건물 껍데기와 전력 계약, 부지와 계통 접속권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에서의 작용
한국은 이 흐름의 바깥에 있지 않다. AI 서비스를 직접 개발하는 기업도 있지만, 더 넓게는 글로벌 AI 생태계의 공급망 깊숙이 자리한다. 미국 빅테크의 설비투자 확대는 한국 기업의 실적 기대를 바꾸고, 그 기대는 국내 주가와 투자심리로 번진다. 중요한 것은 수혜 여부가 아니라 충격의 방향이다. 글로벌 AI 투자가 둔화되면 주문 감소, 실적 둔화, 주가 조정, 투자심리 위축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수출, 제조업, 자본시장이 글로벌 흐름과 긴밀히 연결된 한국은 그 파동을 피하기 어렵다. 닷컴 시기 한국이 상대적으로 변방이었다면, 이번에는 정면에 서 있다. SK하이닉스의 HBM이 없으면 AI 서버가 작동하지 않고, 삼성전자의 파운드리가 흔들리면 AI 칩 생산 일정이 지연된다. 한국은 글로벌 AI 공급망의 핵심 노드가 되었고, 그것은 동시에 글로벌 AI 투자 사이클의 충격을 가장 먼저 받는 위치에 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동시에 국가가 직접 수요 창출자이자 위험 인수자로 들어오고 있다. AI 반도체 스타트업 리벨리온은 국민성장펀드 1호 투자 기업으로 선정돼 6,400억 원을 유치했고 기업가치 3조 원을 평가받았다. 국산 NPU는 경상남도와 울산의 공공 CCTV 관제센터에 처음 공급됐다. 특별법으로 인허가를 풀고, 공공 펀드로 자금을 대고, 공공 수요로 초기 시장을 만드는 구조다. 성공하면 산업 도약의 발판이 되지만, 실패하면 손실은 공적 자금에 남는다. 우정사업본부의 출자금이 우체국 가입자의 자산에서 나온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국내 AI 인프라 투자 역시 자금조달 구조에서 취약성을 내포하고 있다. 과거 부동산 개발 자금이 AI 데이터센터로 이동하고, 연기금과 우정사업본부 같은 기관의 자산 운용이 이에 관심을 보이는 흐름은, AI 투자 열기가 식을 경우 그 충격이 주식시장을 넘어 더 깊은 금융 영역까지 번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기술은 한 번 만들어졌다고 끝나지 않는다. 서버, 전력, 인력, 부품, 자금이 계속 들어가야 하므로 AI는 항상 재생산의 조건을 요구한다. 재생산이란 기술이 지속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서버, 전력, 인력, 부품, 자금이 계속 투입되어야 하는 성질을 말한다. 한 번 투자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자본의 유입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글로벌 투자 사이클이 꺾이면, 그 재생산의 비용을 누가 대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글로벌 자본이 AI에서 빠져나가면, 한국의 AI 인프라도 재생산의 조건을 상실하게 된다.
맺음말
이 글은 AI 기술 자체가 갖는 일정 부분의 의의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았다. AI는 분명 현실의 기술이고, 산업의 일부를 변화시키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영향력을 넓힐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동시에 그 기술을 둘러싼 자본의 움직임은 기대, 가격, 수익성, 자금조달, 레버리지, 그리고 충격의 전염 가능성을 함께 고려하게 만든다. 이 두 사실은 서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성립한다. 기술이 실재한다고 해서 그 기술에 매겨진 가격이 적정한 것은 아니며, 혁신이 진짜라고 해서 투자가 과잉이 아닌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을 하나의 관점으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현재의 AI 투자는 실제 수요보다 경쟁자의 속도에 맞추기 위한 비중이 크다. 임차 계약이 붙은 착공이 아니라 발표만 있는 계획이 많고, 장기공급계약은 실현된 수요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약속이다. 수익은 아직 대부분의 기업에 돌아오지 않았으며, 돌아온다 해도 감가상각 정책이 어떻게 설정되느냐에 따라 그 규모와 시점이 달라진다. 자금은 은행보다 펀드와 SPV를 통해 들어오고 있으며, 위기가 오면 그 자금이 어디로 빠져나가는지를 추적하기 어렵다. 이 세 가지, 즉 수요와 경쟁의 구분, 수익의 귀속 시점과 회계 처리, 자금의 유입과 유출 경로는 AI 붐을 읽는 최소한의 좌표다.
이 좌표 위에서 보면, AI 붐은 단순한 주식 유행이나 기술 낙관론이 아니다. 저성장 국면의 국가가 성장 서사를 필요로 하고, 자본이 그 서사에 몰려들고, 그 자본이 인프라를 만들고, 그 인프라가 다시 기대를 부풀리는 순환 구조다. 이 순환이 건강하게 작동하면 산업 발전이지만, 수익화가 늦어지면 과열이 된다. 문제는 그 과열이 주식시장에만 머물지 않고, 데이터센터와 담보와 대출과 제조업으로 연쇄될 경로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그 연쇄의 전방에 서 있다.
버블과 혁신은 공존할 수 있다. 19세기 철도가 그랬고, 2000년대 인터넷이 그랬다. 다만 그 공존의 대가를 누가 치르는가는 자동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타당한 판단은 단정적인 진술에서 나오지 않는다. 여러 층위가 어떻게 맞물려 작동하는지를 관찰하는 데서 나온다. 기술이 진전하는 속도와 자본이 과잉 누적되는 속도, 물질적 기반의 무게와 금융적 완충의 얇음, 성장의 약속과 불안의 구조를 동시에 보는 것이, AI를 기술 문제가 아니라 경제의 현재진행형 흐름으로 읽는 방식이다.